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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여수 1박 2일 여행후기|오동도의 바람, 향일암의 새벽, 낭만포차의 밤

by Toast 2025.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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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아침 일찍 내려온 KTX를 타고 여수엑스포역에 내렸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바다의 속도’였다. 도시의 분주함과는 다른 리듬. 점심 전 얼른 짐을 게스트하우스에 내려놓고, 첫 목적지인 오동도로 향했다. 방파제를 따라 걷다 보면 파도 소리와 소나무 향이 번갈아 오고, 등대까지 닿는 동안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는다. 섬 자체가 크게 부담 없는 산책 코스라 초행이라도 동선이 어렵지 않다. 오동도는 겨울부터 봄 사이 동백으로 특히 유명하지만, 계절이 달라도 부드러운 숲길과 해안 절벽, 분수광장, 맨발공원 같은 포인트들이 골고루 있어서 ‘산책 맛집’으로 손색이 없다.

 

걷다 보니 출출해져서 근처 카페에서 쉬었다. 바다를 정면으로 두고 앉아 있으면 시간이 조금 늘어나는 느낌이 든다. 컵에 맺힌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지나가는 관광열차의 딸깍딸깍 소리가 멀어질 때쯤 다시 움직였다. 오후 해가 길게 기울면 돌산공원 쪽이 예쁘다는 말을 듣고 길을 잡았다. 공원 전망대에 서면 다리와 항만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해가 지기 직전의 보랏빛이 바다와 어울리며 색이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아래로 돌산대교의 조명이 하나둘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야경의 시간’. 다리 조명은 밤에 색을 바꾸며 반짝이고, 항구를 오가는 배의 궤적까지 합쳐져서 도시의 윤곽을 그린다. 

 

여수에 왔다면 해상케이블카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나는 해가 저문 뒤, 바람이 선선해진 시간에 케이블카를 탔다. 아래로 반짝이는 수면과, 멀리 이어지는 다리와 항만의 불빛들.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 캐빈을 타면 발밑으로 바다가 흐르며 시선이 더 깊어진다. 소요 시간은 편도 약 13분(왕복 25분 내외) 정도라 야경 스케줄에 끼우기 좋고, 노선은 도심과 돌산을 바다 위로 잇는다. 운영시간은 계절·요일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니 방문 전 확인 추천.

 

케이블카 하차 후엔 자연스럽게 낭만포차거리로 발길이 갔다. 거북선대교 아래 바닷바람을 맞으며 포차가 길게 늘어서 있고, 자리 잡자마자 지글지글 소리와 양념 냄새가 올라온다. 문어삼합을 시켜 놓고 젓가락으로 초록 고추를 집어 들었다가, 매콤한 향에 바닷공기가 더 진하게 느껴진다. 옆 테이블에서는 서대회에 소주를 곁들이고, 조금 떨어진 곳에선 버스킹이 시작된다. 관광지의 포차라 호불호가 분명하지만, “여수 밤바다”라는 문장에 가장 가까운 장면은 여전히 이곳에 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파도 소리가 귓속에서 오래 남았다. 여행지의 첫밤은 늘 그렇게 끝난다. 조금 취해 있고, 조금 과식했고, 낯선 침대의 시트는 희미하게 햇빛과 바닷소금을 끼고 있다.

 

둘째 날은 향일암으로 시작했다. 새벽같이 눈을 뜨고 차를 몰아 금오산 자락을 감싸 올라가면, 절집을 덮은 새벽 공기가 먼저 인사를 한다. 돌계단과 바위 틈을 지나 일주문을 통과해 상층부에 오르면, 바다와 하늘이 닿는 지평선이 길게 펼쳐진다. 해가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면 절 마당의 종소리가 금빛으로 번지고, 누군가는 합장을 한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먼 길을 온 이유가 분명해진다. 향일암은 이름 그대로 ‘해를 향한 암자’로, 여수에서 일출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하산길은 오를 때보다 더 천천히 걷게 된다. 가끔 바람에 흔들리는 연등이 어제의 소란을 먼 이야기로 밀어낸다. 중턱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매점에서 국숫국물로 속을 달래고, 바다를 내려다보며 잠깐 멍을 때렸다. “다시 또 오겠지”라는 막연한 예감이 들 때, 그 여행은 이미 절반의 성공이다.

 

도심으로 돌아와 늦은 브런치를 먹은 뒤, 다시 오동도 산책을 한 번 더 했다. 전날엔 등대 쪽을 먼저 돌았다면 이날은 해안 데크를 따라 반대로 걸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바위의 이름이 붙은 포인트들이 나타난다. 코끼리바위가 저기일까, 접힌 병풍처럼 생긴 바위가 여기일까,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군데군데 쉬어 가기 좋은 벤치와 분수광장도 있어 연령대 상관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

 

여수의 식사는 바다가 정해 준다. 전날 밤 포차에서 문어삼합을 먹었다면, 점심엔 게장정식을, 오후 간식으론 길게 썬 배와 함께 서대회를 추천받았다. 자극적인 양념도 좋지만, 이곳에선 간장 게장의 농도나 서대회의 식감처럼 ‘덜어내는 맛’이 더 기억에 남는다. 소스가 아니라 재료가 먼저 말하는 밥상. 바람을 맞으며 먹어서 그랬을까, 평소보다 훨씬 천천히 먹게 된다.

 

여수의 매력은 ‘빨리 달리지 않아도 되는 도시’라는 데 있다. 이동 동선이 컴팩트하고, 대중교통과 도보만으로도 도시의 핵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래도 여수의 가장 좋은 시간은 저녁아침 사이 어딘가다. 해가 질 무렵 돌산 쪽에서 내려다보는 항만의 입체적인 조명들, 밤 공기를 가르는 케이블카의 점등, 바다 위로 골고루 퍼지는 어선들의 깜빡임, 그리고 다음 날 새벽 향일암에서 다시 시작되는 빛의 첫 페이지까지. 이 도시의 하루는 빛으로 시작해 빛으로 끝난다.

 

돌아오는 길, 역 근처 카페에서 마지막으로 커피를 주문했다. 걷고, 보고, 먹고, 쉬는 단순한 여행이 왜 이렇게 오래 남는지 생각해 본다. 아마도 여수는 관광지의 형광펜을 과하게 긋지 않는 도시이기 때문일지도. 필요한 부분에만 색을 칠하고, 나머지는 바다와 바람에게 맡겨 둔다. 그래서 그 빈 공간에 여행자의 이야기가 들어갈 자리가 생긴다. 이번 여정에서 그 자리가 내게도 생겼다.

 

  • 오동도: 방파제 산책로 → 등대 → 분수광장 순으로 돌면 무리 없이 한 바퀴 가능. 동백은 주로 겨울~초봄이지만, 사계절 산책 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다.
  • 해상케이블카: 크리스탈/일반 캐빈 선택 가능, 대략 편도 13분·왕복 25분 내외. 야경 시간대 추천. 방문 전 운영시간 확인 필수. 
  • 낭만포차거리: 거북선대교 아래 바닷가를 따라 포차들이 모여 있다. 밤바다 보며 간단한 해산물 안주 즐기기 좋다. 
  • 향일암: 일출 명소. 새벽 시간대 차량·보행 동선이 어둡고 경사가 있으니 편한 신발과 손전등 앱 준비 추천. 

이틀 동안의 여수를 한 문장으로 적자면, “빛이 만든 도시의 호흡을 따라 걷는 여행”이었다. 바람을 타고 온 소금기, 손에 남은 해산물의 향, 돌계단의 촉감, 케이블카 흔들림의 미세한 떨림까지—작은 감각들이 여행의 여백을 다정하게 채워 주었다. 다음에는 봄 동백이 만개할 때 다시 오고 싶다. 그때의 오동도는 또 다른 표정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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