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 도착한 첫날, 공항의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염도 높은 공기가 폐 속으로 밀려왔다. 바다 냄새와 금속의 냄새, 오래된 돌의 냄새가 한꺼번에 섞여 들어왔다. 트램을 타고 도시의 중심부로 들어가면서, 창밖으로 노란빛이 입혀진 석조 건물들과 세월이 닳아낸 차양들이 연달아 나타났다. 보스포루스 쪽에서 부는 바람은 방향을 여러 번 바꿔가며 얼굴을 스쳤고, 곧 잘게 쪼갠 햇빛이 물 위에서 반짝였다. 그 반짝임은 처음 오는 사람을 위한 환영 인사 같았다. 그 순간, 낯선 도시가 낯설지 않게 되는 데 필요한 건 생각보다 적다는 걸 깨달았다. 맞는 속도로 걷고, 맞는 컵의 차를 손에 쥐고, 바람과 눈을 맞추는 일 같은 것.
숙소에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에미뇌뉘 선착장으로 향했다. 페리 매표소 앞은 출근길의 사람들과 여행자들로 북적였고, 나는 표를 손에 쥐고 검문대를 통과해 갑판으로 올라섰다. 배가 출발하자 도시의 윤곽이 등 뒤로 천천히 멀어졌다. 오른쪽으론 갈라타탑이, 왼쪽으론 모스크의 반구와 첨탑들이 긴 호흡을 그리며 이어졌다. 차를 파는 아저씨가 은색 쟁반 위에 튤립 모양의 유리잔을 가득 얹어 지나갔다. 나는 차 한 잔과 참깨가 잔뜩 묻은 시밋을 샀다. 뜨거운 차의 유리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강바람을 마시면, 낮선 도시의 가장자리에서 내 삶이 아주 조금 확장되는 감각이 든다. 갈매기들이 배를 따라와 울었다가, 어느 순간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반 시간 남짓한 짧은 항로가 끝날 즈음, 배는 카디퀘이 선착장에 닿았다.
아시아 사이드의 첫 인상은 유쾌한 혼잡함이었다. 생선 냄새가 나는 골목과 꽃집 앞의 향기가 서로를 밀어내거나 삼키지 않고 기묘하게 공존했다. 시장 골목을 지나 작은 식당에 앉아 멘멘을 주문했다. 달걀 노른자가 토마토와 고추 사이에서 천천히 풀어지고, 빵으로 가장자리부터 떠먹으면 몸이 서서히 도시의 박자에 맞춰진다. 옆 테이블에선 젊은 커플이 휴대폰으로 지도를 확대하며 토론을 벌이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종이봉투에 채소를 담아 끈으로 묶었다. 내 식탁 위엔 기름이 반짝였고, 그 반짝임은 페리에서 보던 물빛과 어딘가 닮아 있었다.
오후엔 카라쿄이로 돌아와 언덕을 올라갈라타탑 아래로 갔다. 골목마다 빛의 농도가 달랐다. 카페의 유리창은 사람들의 얼굴을 얇게 늘이고, 그 사이로 고양이들이 느긋하게 몸을 늘어뜨렸다. 탑에 올라가면 도시가 팬오라마로 펼쳐진다. 강과 바다, 다리와 돛, 돔과 첨탑—서로 다른 시대와 숨결이 한 장의 사진에 압축되어 버릴 만큼 가까이 있다. 아래로 내려와 커피를 한 잔 더 마셨다. 진득한 향이 입천장을 덮을 때, 이 도시는 눈보다 코로 먼저 기억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해 질 무렵, 다시 선착장 쪽으로 내려가 다리 아래의 노점에서 발륵 에크멕을 집어 들었다. 갓 구운 생선과 양파, 상추, 레몬. 스테인리스 의자에 걸터앉아 한 입 베어 물면 단순함이 어떻게 사람을 감동시키는지 알게 된다. 다리 위로는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바다는 잔잔했고, 멀리 모스크에서 저녁 기도 소리가 퍼졌다. 그 소리는 도시 전체에 깔린 얇은 안개 같았다. 여행의 첫날은 보통 과도하게 많은 걸 욕심내게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컵의 차, 한 장의 배표, 한 끼의 생선샌드위치, 그리고 바람. 더하려거든 바람을 하나 더, 빼려거든 서두름을 하나 덜.
둘째 날 아침, 발아래 돌바닥이 숙성된 빵처럼 탄력 있게 느껴질 만큼 일찍 숙소를 나섰다. 아직 가게 셔터가 절반만 올라간 시간, 모스크의 마당은 새벽빛을 그릇처럼 받아 빛났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림자와 향내와 발걸음이 겹쳐 났다. 유려한 아치와 푸른 타일의 무늬, 천창으로 들어오는 빛의 각도. 사진으로 본 수백 장의 이미지가 한 번에 실제가 되면, 사람은 말수를 줄인다. 말 대신 숨이 길어진다. 나는 그 길어진 숨을 천천히 다 쓰고 밖으로 나왔다.
스파이스 바자르가 문을 열 무렵 다시 에미뇌뉘 쪽으로 갔다. 아치형 입구를 지나 한가운데에 서면, 향신료의 냄새가 파도처럼 번져 온다. 커민과 시나몬, 말린 레몬과 사프란, 너트의 향이 차례대로 코끝을 스친다. 가게마다 산처럼 쌓아 올린 향신료의 단면은 작고 정교한 지층 같았다. 상인은 한 줌의 사과차를 내 손바닥에 올려주고 손짓으로 냄새를 맡아 보라고 했다. 그 순간의 친밀함은 언어를 거의 필요로 하지 않았다. 바구니에는 작은 향신료 봉지와 석류차, 말린 무화과가 들어갔다. 시장을 나와 바깥의 공기를 들이마시니, 방금 전의 냄새들이 여전히 콧속에 층층이 남아 있었다.
점심은 발랏 쪽으로 걸어 내려가 먹었다. 옛 집들의 색이 서로 약속한 듯 선명했다. 노란 집 옆에 민트색 집, 그 옆엔 손으로 칠한 파스텔 블루. 빨래줄이 골목을 가로지르고,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할아버지는 지나가는 고양이에게 자리를 살짝 내주었다. 언덕 아래 작은 식당에서 라마준을 주문했다. 얇고 길게 구운 반죽 위에서 허브의 향이 올라왔다. 식당 주인은 내 앞에 레몬 반쪽과 파슬리를 쓱 밀어줬고, 나는 그 친절이 왜 이렇게 마음을 진정시키는지 생각했다. 도시가 사람을 환대하는 방식은 꼭 큰 이벤트가 아니라, 식탁 중앙의 작은 접시로도 가능하다는 걸.
해가 서서히 기울자 술레이마니예 모스크 쪽 언덕에 올라섰다. 도시가 저녁을 준비하는 시간이 가장 아름답다. 강 위로 다니는 배들의 꽁무니에서 작은 물결이 겹겹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그 곡선들을 보고 있자면, 이 도시의 시간표가 물결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빠르게 다가왔다가, 부드럽게 멈추고, 다시 조용히 흩어진다. 어느새 모스크에서 아잔이 울렸고, 멀리 떨어진 여러 첨탑에서 같은 멜로디가 시간차를 두고 답했다. 서로 다른 골목과 다른 지붕 위로 그 소리가 교차하며 흐르는 장면을, 나는 아마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저녁엔 라키를 한 잔 곁들인 생선 요리를 먹었다. 투명한 술에 물을 섞으면 우윳빛으로 뿌옇게 변했다. 하루의 가장 느린 시간, 스스로의 속도를 한 번 더 낮춘 뒤 잠들었다.
셋째 날은 도시의 다른 얼굴을 보기로 했다. 트램을 두 번 갈아타고 외곽의 거대한 성벽을 따라 걸었다. 도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지켜졌는지가 돌마다 남아 있었다. 성벽의 균열 사이로 자란 풀에서 이상한 위로를 받았다. 지나온 세월의 무게가 사람을 압도하는 대신, 사람을 가볍게 만들어 줄 때가 있다. 그 길을 따라 걷다 작은 카페에 들어가면, 어둠이 아주 약하게 배어 있는 터키식 커피의 잔향이 입안에서 느리게 풀어진다. 설탕을 넣지 않은 커피의 씁쓸함은 이 도시의 진술처럼 정직했다.
도심으로 돌아와 그랜드바자르의 그물망 같은 통로를 잠시 헤맸다. 누구에게나 약간의 길 잃음은 필요하다. 같은 골목을 세 번 지나면서도, 세 번째의 빛과 소리는 앞선 두 번과 달랐다. 색색의 유리 램프가 어둠을 작은 조각들로 쪼개서 천장에 붙였고, 가죽 냄새와 비누 냄새가 교대로 불어왔다. 내가 오래 바라보던 카펫의 문양은 시간의 도안을 닮아 있었는데, 작은 마름모들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다가 어느 순간 미세하게 어긋났다. 그 어긋남이 묘하게 사람을 안심시켰다. 완벽하지 않아서 계속 보고 싶은 무늬, 그게 여행의 무늬와 닮아 있었다.
오후에는 함맘을 찾았다. 뜨거운 돌 위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면, 별 모양으로 뚫린 작은 창들 사이로 빛이 내려온다. 물을 퍼서 어깨에 붓자, 몸의 소음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흰 김이 올라오고, 그 안에서 누군가 웃는 소리가 멀고 가깝게 겹쳤다. 뜨거움과 차가움, 어둠과 빛이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인간에게 말을 걸어 오는 시간이었다. 몸을 말리고 나와 길을 걷는데, 발바닥이 유난히 가벼웠다. 사람에게 필요한 회복은 때로 거창하지 않다. 물과 돌과 빛이면 충분하다.
여행의 마지막 저녁, 다시 페리를 탔다. 이번엔 우스퀴다르에서 배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판에 서면 바람이 앞에서 뒤로, 옆에서 다시 앞쪽으로 교차하며 분다. 바람냄새가 또렷했다. 도시로 돌아가며 유리잔을 다시 하나 받았다. 앙증맞은 잔 위로 김이 얇게 피어올랐다. 맞은편 좌석에 앉은 할아버지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슬쩍 끄덕이며 잔을 들어 보였다. 나는 똑같이 고개를 숙였다.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같은 도시를 통과하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뜨거운 것을 천천히 마시고, 바다를 같은 속도로 바라보고, 도착할 때 아무도 밀치지 않는 것.
부두에 닿자 도시의 불빛이 한층 선명해졌다. 집으로 돌아갈 사람들과 여행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같은 리듬으로 섞였다. 트램에 올라 창밖을 보면서, 사흘 전 공항에서 맡았던 그 냄새들을 다시 떠올렸다. 바다, 금속, 돌. 그리고 덧붙여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사람. 여기선 누군가가 건넨 작은 친절이 도시의 윤곽을 만든다. 차를 얹은 쟁반과 한 줌의 향신료, 레몬 반쪽과 파슬리, 길을 가르키는 손끝, 고양이를 위해 남겨진 그릇의 물. 여행자는 그 작은 것들을 통해 도시의 말을 배운다. 그리고 언젠가 다른 도시에서 같은 말을 건네게 된다. 한 잔의 차, 한 끼의 빵, 한 번의 미소.
숙소로 돌아와 창문을 열었다. 밤풍경은 낮의 소음을 다독여 한 장의 그림으로 정리해 놓은 듯했다. 멀리서 여전히 배가 오갔고, 다리는 얇게 떨렸다. 이 도시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은 명확했다. 내 속도를 기억하는 것. 페리의 속도와, 시장 골목의 속도, 모스크의 마당에서 길어진 숨의 속도, 커피가 식는 속도, 바람이 방향을 바꾸는 속도. 여행은 이런 속도들을 모아 내 것으로 만들고, 언젠가 마음이 엉킬 때 그 속도들을 다시 꺼내 쓰게 한다. 사흘 동안 이스탄불은 내게 그 일을 가르쳤다. 새로운 곳에서 설레는 법, 과하지 않게 흡수하는 법, 적당히 길을 잃고 다시 찾는 법. 잠들기 직전, 나는 손바닥으로 유리창을 가볍게 두드렸다. 유리는 밤의 온도를 담고 있었다. 그 온도를 기억하는 동안, 나는 이미 다음 여행의 첫 문장을 마음속에 적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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